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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최근 5년간 육·해·공군·해병대 사망사고 395명 분석(군에서 죽으면 '두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군사상유가족협회 2022.10.27 20:21 조회 263

군에서 죽으면 '두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최근 5년간 육·해·공군·해병대 사망사고 395명 분석

2000년 이후 157건 사망, 군은 대부분 ‘개인 탓’

위원회 재조사, 98%가 군 내부 문제 때문 밝혀져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출처:  경향신문  2022. 10. 27. 

조형국 기자    황경상 기자

최근 5년간 육·해·공군·해병대 사망사고 395명 분석

2000년 이후 157건 사망, 군은 대부분 ‘개인 탓’

위원회 재조사, 98%가 군 내부 문제 때문 밝혀져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영외 동파배관 확인 중 맨홀에 거꾸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고 사망’ ‘DMZ에서 훈련 중 온열손상(열사병)으로 후송치료 중 사망’…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이 각 군에서 제출받은 군 사망사고의 사건 개요들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국방부가 밝힌 군 사망사고자 수는 406명(개인질병 제외), 이 중 배 의원실이 제출 받은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망사고자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를 통틀어 모두 395명이었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는 그간 전체 사망 숫자로만 공표했던 이들 사망 군인 한 명 한 명의 죽음을 들여다봤다. 그간 전체 숫자는 알려져 있었지만 소속부대, 나이, 사망개요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평균 나이 28세. 숨진 이들 중 3분의 1은 병사, 나머지는 장교·부사관·군무원이었다. 중사가 68명(17.2%)으로 가장 많았고 일병 66명(16.7%), 하사 51명(12.9%), 상사 37명(9.4%), 상병 35명(8.9%) 순이었다. 육군은 22사단(12명), 해군은 2함대(10명), 공군은 8전투비행단(4명), 해병대는 해병1사단(6명)에서 가장 사망이 잦았다. 원인별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자해사망)가 274건(69.4%)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10명 중 7명꼴이다. 여군은 9명 모두 자해사망이었다. 단, 공군이 제출한 자료 중에는 공군 성폭력 피해자인 고 이예람 중사가 빠져 있어 이를 제외한 수치다.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이들 395명의 죽음은 차량 또는 항공·함정사고, 익사, 폭발, 추락, 충격, 화재, 자살, 총기, 폭행 등의 한 단어로 요약된다. 한 단어를 문장으로 늘린 사건개요에서도 그 죽음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의 초점은 사망 직전 군인의 마지막 행동에 맞춰져있다.

죽음을 간추린 한 단어, 한 문장은 많은 사실을 숨긴다. 거짓이 진실을 가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지난해 5월 공군 성폭력 피해자인 고 이예람 중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공보담당 장교는 ‘부부간 문제’ 때문이라 했다. 2014년 폭행으로 숨진 윤 일병의 사인을 군은 최초 “만두를 먹다 목이 막혀 사고가 난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족들의 항의, 여론의 관심과 재조사가 없었다면 묻히고 지워질 죽음이었다.

잘못된 군의 판단을 바로잡는 일이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이유다. 군에서 발생한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이를 공개하는 일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2006~2009년)와 그 후신으로 활동 중인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규명위·2018~2023년)가 해왔다.

특별법으로 설립된 이들 두 기관은 군에서 발생한 과거의 사망사건 1913건(474건은 현재 조사 중)을 들췄다. 이 중 967건(2022년 9월15일 기준) 사건에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상규명은 군에서 발표한 사인이 사실과 다르거나, 사망의 책임이 군에 있다고 인정된 경우, 또 다른 사망의 원인이 밝혀진 경우 결정된다. 967건의 진상규명 결정은 다시 말해 967번의 군 초동수사 부실과 실패, 책임 회피, 나아가 의도적 사건 왜곡과 축소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여전히 군의 사망사고 수사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다이브는 군의 과거 오판에 주목했다. 전체 진상규명 사건 중 2000년 이후 발생한 157건(군의문사위 54건, 군사망규명위 103건)의 과거 군 수사결과 요지와 위원회 조사결과를 비교 분석했다. 157건 사망은 곧 157명의 군인을 의미한다. 군이 그 죽음을 외면 또는 왜곡한 군인들이다. 2000년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신병영문화 창달 추진계획’이 발표되는 등 본격적으로 국방부가 병영문화 개선에 나선 시기다.

군 수사, ‘개인 문제’로 사망 결론 72.6%

157개의 사건에서 군은 공통적으로 ‘군인을 잃은 조직의 문제’보다 ‘군인이 되기 이전의 배경’에서 사망의 원인을 찾는 데 주력했다. 군 수사결과 요지에서 나타난 사망 원인은 개인적 사유들만 거론한 경우가 114건(72.6%)이었다. 18건(11.5%)은 개인적 사유가 주된 원인으로 언급됐지만 군 내부의 문제도 동시에 거론된 경우였다.

‘비만형 허약 체질로 인해 훈련 부담감이 있는 상태에서 선임병의 사적 심부름 및 암기 강요가 있었다’고 군이 결론낸 김 이병 사건(군사망규명위 진정 제154호)이 대표적이다. 군 수사결과에서도 지휘관이나 선임병, 동료들의 폭행·폭언·따돌림이 확인됐지만 군은 ‘업무 미숙’ ‘내성적 성격’ ‘지병(허리디스크) 비관’ 등을 주된 자해사망의 이유로 지목했다.

개인적 사유를 주된 사망의 원인으로 언급한 132건의 군 판단을 모아보면, 군이 사망사고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패턴이 보인다. 원인을 보면 ‘내성적 성격, 허약한 체질, 지병 등 개인 심신 사유’가 모두 66번으로 가장 많았고 ‘군복무 부적응’(40번), ‘업무수행 부담’(23번), ‘가족 문제’(22번), ‘연인의 변심’(11번)순이었다. 정리하면 ①우선 군인 개인의 신체적·정서적 문제에서 흠을 찾으며 ②모두가 하는 군 생활에 적응을 못한 책임을 따지고 ③가족의 건강이나 경제상황에 책임을 돌리거나 ④헤어진 연인이 있었다는 식이었다.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지휘관·선임병 등의 폭언·폭행 등 가혹행위나 과도한 업무 등 병영 부조리만 사망 이유로 지목된 건은 17건(10.8%)뿐이었다. 군 내부의 문제가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됐음에도 위원회에서 다시 진상규명 결정을 내린 것은 당시 군이 가혹행위로 인한 자해사망을 ‘공무 수행 중 사고 및 재해로 발생된 사망사건이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순직 심사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2년 관련 제도가 개선되기 전까지 자해사망자는 아예 순직 심사 대상이 아니었다. 죽도록 맞아서 죽은 것과, 죽을 만큼 맞아 차라리 죽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칼 같이 구분했던 셈이다.

위원회 조사 결과 ‘군 내부 문제’ 사망 98%

군 수사는 대부분의 책임을 개인으로 돌렸지만 위원회 조사 결과는 그 반대였다. 전체 157건 중 3건을 제외한 154건(98.1%)이 병영 부조리 또는 군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주된 요인이었거나 그 배경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군 수사에서 ‘개인 사정’으로 뭉뚱그려졌던 사건에서는 군 내부의 구조적 요인과 병영 부조리가 발견됐다. 군 수사에서 선임병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가 지적됐던 사건에서는 병사 관리감독 소홀, 절차나 규정을 위반한 인사, 무성의한 부대 운영 등 군 내부의 구조적 문제도 다수 함께 발견됐다.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구체적으로는 내무 부조리와 구조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 경우가 86건(54.8%), 병영 부조리만 해당되는 경우는 36건(23%), 군 내부의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사건이 30건(19.1%)이었다. 2건(1.3%)은 개인적 이유가 주된 원인이었지만 병영 부조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인정된 경우였다.

154건의 구체적 사망 원인을 다시 분류해보면 ‘지휘관·선임병의 폭언·폭행 등 가혹행위’가 104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됐고 ‘부적절한 신병 관리 등 지휘관의 관리감독 소홀’이 88번으로 두 번째였다. ‘과도한 업무부여, 미흡한 인수인계 등 부적절한 지시’가 45번, ‘절차·규정을 위반한 보직 부여 또는 보직변경 요청 묵살 등 부적절한 인사 조치’와 ‘질병·사고·재해 등 공무상 발생한 사고’가 각각 19번 등장했다.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두 위원회가 군의 판단을 뒤집은 154건의 사망사건에서는 군이 주목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숨기려고 했던 사망의 근본적인 원인들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가장 많은 사망의 원인은 폐쇄적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됐던 폭행·폭언 등 가혹행위였다. 그 배경에는 비일비재했던 폭력과 위계를 방조, 때론 ‘군기를 세운다’는 이유로 부추겼던 지휘관들의 무관심이 있었다. 조직 특성상 ‘상명하복’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부당한 지시나 요구에까지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처럼 군은 그 죽음들을 수사하고 판단했다.

도리어 공무상 발생한 질병·사고·재해마저도 개인의 의지박약, 허약한 체질, 가족 불화, 복무 부적응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개인의 잘못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위원회 조사 결과 확인됐다. 2005년 12월 숨진 금모 일병은 격오지인 레이더 기지에서 주특기 외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데다 선임병들의 욕설·질책을 당하며 우울증에 빠졌고, 의문사위는 재조사 결과 “질병의 발생 또는 악화가 공무수행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된 사망”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군은 금 일병이 계속되는 경련으로 인한 신병비관, 가족과 애인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고 판단했다.

이들 154건 외에 3건(1.9%)은 군 복무 시절 발병한 질병이 전역 후 사망 원인이었는데 군에서 순직 인정을 하지 않은 경우였다. 현행 제도로는 군에서 얻은 질병으로 전역 후 사망하면 사망 시점에 현역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순직 심사조차 받을 수 없다. 군사망규명위가 관련 사건을 진상규명하면서 “복무 중에 발생한 질병으로 전역한 사람이 그 질병이 주된 원인이 되어 사망한 경우 국방부가 순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신속히 마련할 것”을 국방부에 요청하는 이유다.

단순 총기사고가 ‘신변비관 자살’로 둔갑

157건의 진상규명 사건 곳곳에서 위원회는 군의 거짓말을 지적했다. 위원회 재조사가 아니었다면 끝내 드러나지 않았을 진실들이다.

2002년 4월 숨진 이모 상병을 군은 게임 중독자로 만들었다. 군은 이 상병이 인터넷 게임 ‘리니지’에 중독됐다고 했다. 이 상병이 휴가 중 평소 알고 지내던 게임동우회 회원의 리니지 아이디를 도용했고, 캐릭터 삭제와 아이템 분실로 곤경에 처했다고 봤다. 군은 이 상병이 게임동우회 구성원들로부터 받을 지탄, 이어질 법적 책임이 두려워 탈영을 저질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결론지었다.

이같은 군의 수사결과는 “사실과 다르거나 과대황장(사실보다 지나치게 떠벌림)하거나 사실을 왜곡한 것”(위원회 기록)이었다. 이 상병이 게임 때문에 죽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게임 아이디의 로그인 기록은 군인인 이 상병이 접속할 수 없는 위치와 시간의 것들이었으나, 군 수사당국은 제3자의 접속 가능성을 배제했다. 타인의 아이디를 도용한 것도 아니었고, 계정과 아이템은 사후에 모두 복구돼 법적·도덕적 책임을 질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재조사 과정에서 당시 군 수사관은 “너무 게임에 국한해 수사가 되고 판단을 하다 보니 사망 원인판단에 있어 부족했던 것 같다”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을 재조사한 군의문사위는 참모장 운전병으로 복무한 이 상병이 상관인 참모장의 관사 관리부터 자질구레한 심부름까지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시에 직속 지휘관인 수송근무대장이 진급 문제로 참모장에게 갖게 된 불만을 이 상병에게 쏟아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상병의 잘못은 없었지만, 간부들 간의 불협화음과 혼선에서 빚어진 차질이 마치 이 상병의 탓인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됐다. 간부들과 선임병들은 이 상병에게 폭언·질타를 이어갔다. 위원회 조사결과 밝혀진 이 상병의 죽음에는 이런 진실이 감춰져 있었다.

지난 2014년 8월 한민구 당시 국방장관이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에 대한 국회 국방위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하여 동석한 군 수뇌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2014년 8월 한민구 당시 국방장관이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에 대한 국회 국방위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하여 동석한 군 수뇌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군은 단순 총기사고를 자해사망으로 몰아가면서 원인을 신변 비관으로 둘러대기도 했다. 군은 2001년 12월 출동차량에서 내리는 순간에 총기에 맞아 숨진 전모 소위가 어려운 가정사정, 모친의 사망, 형의 교통사고와 불투명한 장래 때문에 자해를 택했다고 봤다. 그러나 전 소위가 처한 가정 문제는 자해사망에 이를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위원회는 “어머니의 사망과 형의 교통사고와 같이 망인의 가정에 불행이 닥친 것은 사실이나, 이와 같은 불행은 평범한 가정에서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는 문제”라며 “이런 사정 때문에 자살을 고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판단했다.

자해사망이 아니라는 증거는 곳곳에 있었다. 전 소위가 출동한 임무는 실탄 삽탄·장전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점, 몸 곳곳에서 확인된 화약이 손에서는 검출되지 않은 점, 자해라면 차량 좌석에서 어렵고 힘든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었다. 당시 헌병대 수사관도 자살의도에 확신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위원회가 “자살로 인한 사망은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린 이유다.

입단속하고 수첩 찢고, 잘못 감추기 급급

군 수사당국의 상습적 ‘개인 탓’은 군 내부의 구조적 결함과 부조리를 가린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다. 2011년 9월 세상을 등진 김모 일병은 반복적인 인격비하와 폭언·욕설에 시달렸고 숨진 당일까지 질책을 당했지만, 군은 어려운 가정형편과 장애가 있는 동생 문제 등 개인적 사정이 김 일병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봤다. 이는 군이 개인적 사유로 인한 죽음이라 판단한 114개의 사건에서 되풀이됐다.

군은 사실관계를 비틀 뿐 아니라 때론 숨기기도 했다. 2009년 6월 공군에서 숨진 이모 이병은 간부들의 방치 속에서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폭행·폭언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이병이 숨진 후, 선임병과 수송반장은 헌병대 조사를 앞둔 후임병들에게 “너희들 끌려가서 조사받을 수 있으니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다. 주임원사는 “우리 부대는 구타 없잖아. 자살원인이 꼭 부대 탓만은 아니니 말 함부로 하지 마라”라며 함구를 강요했다. 헌병대 수사관은 부대 책임은 수사하지도 않았고, 이 이병이 구타·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진술이 있었음에도 ‘군 생활 부적응으로 인한 심적 부담감’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6년 5월 육군에서 총기 자해사망에 이른 김모 일병 사건도 비슷했다. 일상적인 욕설과 ‘갈굼’이 김 일병을 죽음으로 내몬 후, 중대장은 관물대를 뒤져 김 일병이 남긴 수첩을 찢어 버렸다. 헌병대가 이 사실을 파악하고도, ‘평소 소심하고 내성적 성격’을 사망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2021년 위원회 재조사에서 확인됐다. 김 일병의 사망 후, 15년 만에 밝혀진 진실이었다.

외부 감시만이 유일한 해법

군의문사위·군사망규명위가 도합 9년 동안 활동하면서 접수한 사건은 총 2387건(군의문사위 600건, 군사망규명위 1787건)이다. 이들 기관은 기본적으로 진정이 접수된 사건을 조사했다. 군 사망사고를 당한 이의 친족 또는 목격자, 또는 목격한 사람에게 그 사실을 직접 전해들은 사람이 진정을 제기한 사건에 한해 조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조사 범위에 한계가 뚜렷했다. 2021년이 되어서야 법 개정으로 군사망규명위 직권조사가 가능해졌고 지금까지 21건의 직권조사를 진행했을 뿐이다.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군사망규명위에 따르면 변사·자해사망·일반사망·병사 등으로 순직을 인정받지 못한 군 사망자는 약 3만3000여명으로 추산된다. 두 위원회가 9년 동안 조사를 했음에도 군 외부에서 사건 재검토가 이뤄진 비중은 10건 중 1건이 채 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꾸준히 군 문화 개선이 추진됐고 군 사망사고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러나 2020년에 55명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던 군 사망사고는 지난해 103건으로 전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급감했던 자해사망이 2010년대 초반 수준으로 다시 오른 것이 주요 원인이다. 최근의 군 사망에서 눈에 띄는 추세는 간부들의 사망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 육·해·공군에서 숨진 379명 중 간부(군무원 포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64.9%에서 지난해 69.9%까지 늘었다.

자해가 주된 원인인 군 사망사고가 언급되면 군은 늘 20대 남성의 자살률과 비교했을 때 군의 자해사망 비율이 낮다는 수치를 제시하곤 한다. 군은 자해사망을 개인적 사유로 간주하려 하지만 병영 내부와 일반 사회를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다. 2000년대 이후 위원회 조사결과 사망 원인이 뒤바뀐 136건의 자해사망 사건들을 살펴보면 적지 않은 죽음이 군이 밝힌 개인적 사유가 아닌 군내 문제와 관련돼 있었다. 최근 벌어졌던 여러 사망 사례에서도 그랬다. 개인사유로 인한 사고 사례 또한 위원회 조사를 보면 업무 중 발생하거나 관리감독이 소홀하는 등 온전히 개인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웠다.

병영문화 개선을 외친 지 20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나아졌을까.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군 사망사고 내용을 살펴보면 군에서는 자살로 분류하지 않았지만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고된 사례가 21건 더 있었다. 안전사고 등을 제외한 수치다. 사건개요로 미뤄볼 때 자해사망 가능성이 의심된다. 군에서 밝힌 자해사망 숫자보다 실제 자해사망 건수가 더 클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들의 죽음에 군은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었을까.

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폐쇄적인 군의 문화를 바꾸려면 외부 개입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군내 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여러 개선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미완에 가깝다. 지난 7월부터 개정된 군사법원법이 시행되면서 군 내부 사망과 성범죄 사건의 수사권을 민간으로 이관했지만 군의 협조가 없으면 외부의 접근이 쉽지 않다. 군이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면 민간 경찰에 사건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 초동단계인 사실조사도 군이 맡고 있다.

7월부터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도 군인 등이 복무 중 사망한 경우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이를 통보받아 사망 사건에 조기 개입할 수 있고 군부대를 방문 조사할 수 있지만 군의 협조를 얻어야 방문 조사할 수 있는 등 제약이 있다. 인력 충원, 과중한 업무 부담 완화도 남은 과제다.

윤석열 정부가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군사망규명위 활동은 추가 연장 없이 내년 9월13일로 마감될 예정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졌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폐지됐던 것과 비슷한 수순이다. 송기춘 군사망규명위 위원장은 지난 15일 ‘2022년 조사활동보고회’에서 “아직 진정이 접수되지 않은 안타까운 죽음들을 일일이 조사해 그 억울함을 풀어드리기 어렵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며 “군에서 발생한 여러 의문이 있는 죽음을 조사하는 독립된 기구가 상설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군에서 자행된 인권침해로 고통받고 죽음에 이른 희생자들을 생각한다. 이제는 죽음의 굴레를 멈출 때”라며 “인권피해 없는 선진병영을 위한 외부감시 제도가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